1993년 세계일보가 2000년을 열어 갈 한국의 차세대 리더를 선정했는데 당시 1호로 소개된 분이 바로 문세영 검사였습니다. 그리고 3년 후 전주지검 근무시절인 1996년 8월 상가에 다녀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팔다리 마비와 언어 장애를 입어 사실상 식물인간이 되셨습니다. 2007년 2월 병세가 호전돼 지인들에게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는 얘기까지 들었는데 안타깝게도 별세하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문세영/법조인:1(이사람/2천년대를 여는 한국의 차세대:1)
[세계일보]|1993-07-23|10면
사정바람으로 검찰의 고위간부가 구속되거나 옷을 벗어 대내외적으로 「자존심 강한」 검찰의 위신이 형편없이 떨어져 있다.재산공개 파문으로는 유능한 인사가 물러나 검찰의 사기와 조직에 아직도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겨놓고 있다.김두희장관박종철총장팀이 들어서 「사정수사」를 하고는 있으나 아직도 「구각」을 크게 탈피하지 못했다는 소리가 쉬지 않고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검찰의 오랜 숙원인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검찰상 확립」이란 난제는 지금도 요지부동으로 남아 있다.전임 총장들이 복무지침으로 「정의로운 검찰」(김기춘) 「성숙한 검찰」(정구영) 「국민의 검찰」(김두희)을 내걸고 나름대로 독려해왔지만 말이다.
자성과 새로운 다짐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래도 일선에서 올바른 검찰권 확립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젊은 검사들이 있어 검찰조직은 물론 국민들도 앞날에 기대를 걸고 있다.아직은 그 기대치가 미약하긴 하지만.
수원지검 특수부 문세영검사(38·사시23회)가 주목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검사는 우선 문제의식이 투철하다.검찰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과제가 무엇이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다.그러면서도 그는 입을 열지 않는다.그처럼 어렵고 미묘한 문제는 검찰고위간부들이 얘기해야할 몫이고 그는 다만 일만 할 뿐이다.판사는 판결로 말하듯 검사는 「일」을 통해 말한다는 자세인지도 모른다.
문검사의 가장 큰 장점은 한마디로 몸 안 아끼고 「죽을둥 살둥」 일한다는 점이다.이는 그를 아는 선배 및 동료 검사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부지기수다.
문검사는 항상 일만 생각하고 일단 일이 터졌다하면 집에는 아예 갈 생각을 안한다.휴가는 생각지도 못한다.요즘같이 젊은이들이 편하려고만 하는 세태와는 전혀 딴판이다.그래서 문검사는 항상 몸이 약해 보인다.일에 치여서.
이런 사람들에겐 으레 『한 건 올려 잘보이려고 한다』는 질시가 따르게 마련이나 문검사는 그런 소리를 듣지 않는다.솔선해서 힘든 일을 자청하는데다 수사요원들에게 친형제처럼 잘해주기 때문에 「딴소리」가 날 틈이 없다.사실 검사가 수사를 할때 그 승패는 같이 일하는 수사관들의 노력에 좌우된다.이점에 관한한 문검사는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평균 2∼3년마다 자리를 옮기는게 검사생활이다.문검사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수사관들은 신문을 통해 문검사가 「큰건」을 맡아 일한다는 사실을 알면 일과후 일부러 찾아가 문검사를 돕는다.평소 「팀워크」를 중시하는 문검사 특유의 수사스타일 덕분이다.
『머리가 좋아 사건의 요점을 잘 파악하고 조직에 충성하며 윗사람들에게 예절을 잘 지키고…』하는 이종왕수원지검특수부장의 이야기는 오히려 밋밋하다.
문검사는 83년 검사로 임관된 후 계속 지방으로 돌았다.시쳇말로 빛을 못본 것이다.
89년 6공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은 이철규사건이 터졌다.그것도 5,6공이 항상 「뇌관」으로 생각하는 광주에서.
조선대생 이군의 죽음이 타살이냐 실족사냐를 놓고 전국이 들끓었다.이 사건에서 문검사는 실족사임을 명쾌하게 파헤쳐 그해 서울지검 특수부로 발탁됐다.
인물많은 23회(동기생이 모두 84명)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91년 서울음대 입시부정사건도 문검사가 해결했다.
예체능계 입시부정은 그동안 소문으로만 돌았으나 그가 처음 밝힌 것이다.게다가 수사대상이 서울대였다.「대어」를 낚은 것이다.
같은해 방송가의 PD부정사건도 그가 맡았다.지난 6월 경기도지역 미스코리아 선발부정사건으로 지방신문사의 유력간부를 구속한 것도 검찰사상 문검사가 처음 한 것이다.이를 계기로 대검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부정사건을 수사토록 전국 검찰에 지시,서울지검에서도 같은 사건을 캐냈다.
문검사를 데리고 일한 적이 있는 서울동부지청 이명재차장검사는 『문검사는 사기 횡령 뇌물수수 강력사건등 검찰수사의 단골메뉴가 아닌 특유한 수사아이템을 꾸준히 발굴,검찰수사의 고유영역을 확대해왔고 이 점은 크게 돋보인다』고 말했다.
문검사는 자신에 대한 주위의 칭찬이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눈치다.그러면서도 △끝없는 자기희생 △팀워크 중시 △성실과 정성 그리고 인내가 수사의 개가를 올리는 지극히 평범하지만 왕도라고 말한다.
문검사는 앞으로도 민주주의사회 자본주의 경제질서 아래서 공정한 룰,즉 페어플레이를 깨뜨리는 범죄행위를 지속적으로 단속하고 싶다고 자그마한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국민 누구나가 가장 바라는 검찰권 행사가 아닐까.작금에 일어나는 모든 불미스런 사건들,개혁이다 사정이다 하는 거창한 이름으로 연일 단죄되는 사건들도 모두 페어플레이를 위반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그렇다면 문검사의 자그마한 포부는 결코 작은게 아니다.
96년부터 시작되는 법률시장개방(우루과이라운드)에 앞서 검사 개개인의 전문영역의 확보도 문검사가 눈독들이는 과제임은 물론이다.<정호원기자>